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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국민국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국민 형성’(Nation Building)의 과정에서 국가의 지도력을 유지하고 국민적 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널리 이용되었던 전략 가운데 하나는 국가가 역사교육을 매개로 역사해석에 대한 독점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통 국정교과서 체제로 부르는, 국가의 역사교육에 대한 개입은 그러나 교과서 편찬과정에서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학계의 연구성과들을 수렴하지 않고 특정 정파의 역사적 관점을 강제하는 도구가 될 때 엄청난 역사적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일본과 독일 등의 파시즘 국가에서 자행된 폭력과 침략의 정당화와 그로 인해 초래된 대파국, 그리고 공산권 국가 붕괴 이후 국가에 의해 억압되었던 기억의 분출과 과거 공산당 독재체제 하에서 만들어진 역사교재의 폐기는 바로 그러한 특정 목적에 복무하는 역사인식이 만들어낸 현실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정부가 좋아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선진화’된 국가에서 국가가 역사교육의 내용에 개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마도 과거를 미화하는 데 골몰하고 있는 일본 정도가 예외일 뿐 대부분의 ‘선진’ 구미 국가들에서 역사교육은 학계·교육계 등 관련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져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여기에 참여하는 관련 전문가들은 학계 일반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들로 구성되는 게 상식이다. 그것은 역사교육이 가진 전문성과 관련되어 있다. 평생을 학문과 교육에 진력해 온 학자나 교육자가 집필한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비전문가인 국가가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따라서 역사교과서에 대한 국가의 개입 수준은 그 나라의 ‘선진화’된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교과서 집필과 관련된 매우 전문적인 영역에 국가가 개입하고 정부가 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희귀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교육과학기술부 관련 국장이 역사교과서 집필 원칙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하나의 지침처럼 말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역사교과서 집필 관련 업무를 주관하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 개발 공동연구진을 구성하여 연구한 내용을 행정가가 ‘정책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관련 전문가들 위에 관료가 있다는 발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학계나 교육계 전체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학문으로서의 역사’와 ‘관심으로서의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역사는 ‘만인이 전문가’인 영역에 속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전경련을 비롯한 수많은 개인들이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신념’을 ‘역사지식’으로 포장하고, 사실상 판타지물인 연속극들은 사극이라는 이름으로 텔레비전에서 오도된 역사지식을 전파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일방적으로 잘못되었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아마도 ‘역사 판타지’ 연속극을 집필한 작가는 예술적 상상력을 주장할 것이고, 제한된 독서와 자료를 근거로 탈맥락적으로 자신이 규정한 역사를 말하는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고집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러한 ‘취향’에 따른 역사 이해가 허용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관심으로서의 역사’ 영역에 속한 것으로, 관련 분야를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독서하고, 가르쳐 온 역사학자나 역사교육자들의 ‘학문으로서의 역사’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역사학자로 행세하는 현실 속에서 교과부 장관이나 관료가 역사학자들의 전문성을 무시하거나 소수 학자들의 견해를 학계 일반을 대표하는 견해로 확대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역사교과서가 학문적 토론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특정 집단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수정되는 이 나쁜 전례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교과부는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적어도 역사‘교과서’만큼은 ‘정권의 의지’가 아니라 ‘학문적 성찰’이 그 집필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신문- 201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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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1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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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1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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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도시사회학 과목을 담당하는 최진호 교수의 요청으로 이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과 함께 오랜만에 수원 화성을 돌아보았다. 아침 10시 창룡문 앞에서 출발, 성곽을 따라 북문, 서문, 팔달산 방향으로 성곽을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였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설명을 곁들이면서 동북공심돈, 연무대, 방화수류정, 화홍문을 살펴보고, 팔달산에 올라 서장대를 거쳐 남문인 팔달문으로 내려왔다가 시장을 지나 다시 성벽을 따라 창룡문 앞까지 약 3시간 동안 5.8㎞를 걸으면서 돌아본 답사였다. 절기로는 가을이 지나고 초겨울로 접어들 시기이건만 아직도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가운데 걷기에 쾌적한 날씨였다. 다만 주말이다 보니 중국, 일본 등 외국인 관광객과 우리나라 초·중·고등학생, 관광객들이 몰려 혼잡하고 정신이 없었다. 또한 화성 최고의 자랑거리인 방화수류정, 화홍문, 남문인 팔달문, 남수문 등의 공사로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화성이 언제부터 이렇게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나 놀랍기도 하였다. 세계적 관광지 자리잡은 화성 우리나라에는 산과 구릉이 많아 예로부터 성을 많이 쌓았다. 성곽은 그 목적과 기능에 따라 수도나 지방 행정시설로서의 도성이나 읍성, 군사적 목적으로 축성한 산성이나 행성 등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성’이 붙은 지명을 보면 경기도 안성·화성, 강원 고성·횡성, 충남 홍성, 전남 보성·장성·곡성, 경북 의성, 대구 달성·수성, 경남 고성과 대전 유성 등이 있다. 그 밖에도 낙안, 비인, 고창읍성 등은 규모는 작지만 현재까지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성’들은 대부분 행정지명으로만 전할 뿐이고, 실제로 현존하는 성곽들을 보면 군사적 기능을 지닌 산성들이 대부분이다. 산성이나 행성 등은 도성, 읍성에 비해 덜 파괴되고 훼손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1796년에 완공된 화성의 역사는 비록 짧지만 한양성, 평양성, 경주의 금성, 월성, 하남 위례성 등과 마찬가지로 수도인 도성으로 설계되고, 축성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정조는 처음 구상에서부터 완공,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화성으로의 천도를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대에 걸쳐 왕권을 마음대로 주무르던 부패한 세도세력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것 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성속 정신·문화를 전하자 화성 탄생의 시발점은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배려와 사랑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는 그 기막힌 현장을 지켜본 10세의 어린 소년이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고난 끝에 왕위에 오른 정조는 아버지를 구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효’로서 갚고자 아버지 묘를 옮기기로 하고 수원부가 있던 화산 아래로 그 자리를 확정하였다. 이를 위해 그곳에 거주하던 백성들의 거처를 새로 마련해줘야 했는데 화성은 이런 사정들을 배경으로 조성된 성이었다. 따라서 화성의 내면인 정신은 부친에 대한 효라고 하는 가족애와 백성에 대한 사랑인 인간애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실제로 화성 축조과정을 보면 정조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석공, 미장이, 대장장이, 와공, 벽돌공 등 전문기술자들은 물론 뒷일을 하던 잡역부들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임금을 지급했다. 다음으로 더욱 뛰어난 점은 화성의 외면을 이루는 최고 수준의 실용성, 예술성, 다양성이다. 채제공, 조심태, 정약용, 김홍도 등 당시 최고의 행정가와 학자와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이 성곽을 이루어냈다. 축성과정과 기술, 자재 등 모든 면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내용들이 《화성성역의궤》에 글과 그림으로 기록되어 전함으로써 완벽한 복원을 가능하게 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화성을 다시 돌아보고 얻은 준엄한 가르침은 이제 성곽의 외면이 아니라 그 내면 속에 정신과 문화를 담아 전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기 때문이다. [경기일보 - 20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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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배안나
- 작성일20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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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 불신감 팽배… 당리당략 떠나 희생할줄도 알아야 아이들을 거느리고 혼자 사는 여인이 있었다. 막일을 하면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데 생활이 너무나 고달프고 힘겨워 하나님에게 구원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구구절절이 신세를 하소연하고 100달러만 보내 주시도록 편지에 적었다. 그런데 그 지방 우체국에서는 \'하나님 앞\'으로 되어 있는 이 편지를 어찌 할 바 몰라하다가 우체국장이 하는 수 없이 내용을 뜯어보았다. 눈물 겹고 애절한 사연을 읽은 우체국장은 있는 달러를 긁어모았다. 잔돈을 모으다 보니 95달러가 되었다. 우체국장은 답장을 근사하게 써서 용기를 북돋우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라고 봉투에 쓰고 그 여인에게 회신을 보냈다. 초조히 답장을 기다리던 그 여인은 드디어 날아온 편지를 받고 가슴 조이면서 내용을 뜯어보았다. 하나님은 결코 그 여인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위로의 말과 함께 부탁한 돈을 보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돈을 세고 또 세어 보아도 5달러가 부족하였다. 그래 하나님에게 다시 편지를 보냈다. 감사의 말을 쓴 후에,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100달러를 보냈을 터인데 그 놈의 우체국장이 5달러를 착복했을 것이라며 벌을 내려 달라고 한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관리들의 부패를 꼬집기 위해 이야기되고 있는 가슴 아픈 조크이다. 며칠 전 한 신문에서 20~40대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신뢰도가 20%대로 일부 연예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것으로 보도했다.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신뢰도는 40%대이긴 하지만 여전히 다른 인물들에 비해 뒤졌다. 이 보도의 신뢰도는 어떤지? 이 보도를 한 신문 자체의 신뢰도는 어느 정도인지 반문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지도자들, 특히 정치인들의 신뢰도는 높지 않는 것 같다. 신뢰는 "다른 사람이 바르게 행동할 것이며, 약속을 지킬 것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다. 신뢰는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인프라 중 인프라이고 사회 운영의 기초 메커니즘이다. 부부사이에 신뢰가 없으면 항상 감시하고, 확인하고, 심지어 뒷조사까지 해봐야 한다. 직장에서 신뢰가 없으면 모든 일을 문서로 해야 하고, 작은 것이라도 상부에 보고하고 처리해야 하고, 직장인들은 언제 해고될 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몫을 챙겨두어야 한다. 상거래에서 신뢰가 없으면 계약서가 길어야 하고, 담보가 많아야 하고, 변호사의 자문 비용을 많이 지불해야 한다. 신뢰도가 낮은 사회는 고비용 사회이다. 신뢰도가 낮은 사회는 스피드도 떨어진다.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신뢰(트러스트)가 사회적 자본이라는 것을 갈파했다. 경제도 정치도 교육도 트러스트라는 사회적 자본이 없으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우리 사회는 정(情)으로 뭉쳐있고 한가족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 문제는 이런 정과 한가족정신이 소집단을 넘어선 사회관계에서도 신뢰관계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신뢰도도 꾸준히 높아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와 감시가 강화되었고, 사회 전반에 걸쳐 투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 사회의 신뢰도는 낮고 특히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불신감은 팽배해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변화가 많을수록 필요로 하는 신뢰의 양과 질도 커지고 있다. 식물이 자라고 꽃이 피기 위해서는 토양이 좋아야 하고 거름이 있어야 한다. 신뢰라는 꽃에 필요한 거름은 리더의 희생이다. 지위가 높은 자가 희생을 하고, 가진 자가 좀 손해를 감내하고 배운 자가 내놓을 줄 아는 풍토 속에서 신뢰는 자라고 그 신뢰 속에서 경제도 교육도 정치도 발전하게 될 것이다. 신뢰는 발전을 낳고, 또 그 발전은 신뢰를 낳고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정치인들의 신뢰, 그것도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 골몰하지 않고 더 큰 것을 위해 희생을 해야 생기는 것이다. [경인일보 - 20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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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배안나
- 작성일20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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