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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 종종 이야기하는 것 중에 `낙인 효과`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명사 정보가 주는 신속한 판단의 장점과 편견의 발생이라는 단점을 모두 아우르는 현상을 뜻한다. 예를 들어 "○○는 사람을 죽였대"라는 말과 "○○는 살인자래"라는 말을 보자. 두 표현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자보다 후자에서 우리는 무언가 더 강한 느낌을 받는다. 왜일까? 사람을 죽였다는 묘사보다는 살인자라는 범주, 즉 명사 정보가 더 강한 심리적 효과를 지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반응도 다르다. 전자의 표현을 들으면 "○○가 왜 그랬을까?" 등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반면, 후자를 들으면 "○○는 나쁜 인간이군!"이라는 식으로 단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범주로서의 명사 정보는 일종의 `심리적 도장찍기` 효과를 지닌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낙인 효과라는 말을 빌려 이야기한다. 그런데 낙인 효과는 그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대해 평가하는 전반에 걸친 오류와 함정을 잘 말해주는 기회가 된다. 예를 들어보자. `55세의 중년 남자로 서울 근교 신도시 거주자이고 대형 빌라 소유주이며 대기업 임원`이라고 사전에 정보를 들은 김갑동 씨를 지금 막 만났다. 이 사람은 그런데 `청바지를 입고 있고, 왁스를 바른 최신 유행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으며,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소 당황해 할 것이다. 하지만 김갑동 씨에 대해 사전에 들은 정보가 `상상력이 풍부하며, 다양한 활동을 즐기며, 외향적 성격`이었다면 어떨까? 지금 내 앞에 있는 모습 때문에 놀라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무엇일가? 전자는 특정 인물의 명사화된 범주 정보를 나열한 것이고 후자는 그 인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에는 그 범주 정보들로부터 쉽고 빠르게 전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냈을 터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그 묘사 자체에만 기초해 지금 있는 사람을 판단할 가능성이 더 크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우리 주변의 사회 현상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하철 ○○녀`라든가 `○○남`으로 어떤 사람을 불러놓고 그 사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성격 혹은 행동 특징들까지도 우리는 `당연히 그렇겠지`라는 생각으로 빠르게 추론해 낸다. 물론 그렇게 추론해 낸 정보들이 그 사람과 맞아떨어질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명사화된 범주 정보로 어떤 사람을 쉽고 빠르게, 즉 쉽게 판단하고는 그 판단이 맞을 것이라는 착각을 자주 하곤 한다. 그 그릇된 판단의 중심이자 가장 큰 피해자는 나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보는 사람에 관한 서류에는 수많은 명사범주 정보가 존재한다. 출신지역, 출신학교, 형제관계, 예전의 직급 혹은 직함 등 말이다. 그런 범주들이 과연 그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굳이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통하지 않고서라도 그 설명 양이 얼마 되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성격이라든가 성향, 그리고 장단점을 판단하는 것은 당연히 그 사람을 여러 차례 다른 상황과 시점에 만나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측면을 살펴봄으로써만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르게 지닌 특징들을 파악해 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압박이 많을수록 CEO들은 명사화된 범주 정보들에 눈길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부분 자신의 고정관념을 만족시키거나 바라던 결과로 이어지기보다는 당황스럽게 만드는 경우를 만나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에 대해서만큼은 쉽고 빠르게 내리는 결론이 대부분 틀린 이유다.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사람에 대한 판단인 이유는 빠르게 인출된 고정관념이 내 판단을 장악할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만나면 맨 처음에 해야 할 일은 최대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내가 원하는 인재상과 맞아떨어지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매일경제 201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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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지윤
- 작성일201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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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과 의사가 시신 한 구를 부검하는 데에는 몇 시간이 걸릴 뿐이지만, 의과대학 학생이 시신 한 구를 해부하는 데에는 몇 달이 걸린다. 오늘 해부가 끝났다고 시신을 다 쓴 것이 아니다. 시신을 덮개로 덮었다가, 다음 실습 시간에 덮개를 열고 이어서 해부한다. 이것을 몇 달 동안 되풀이하는 까닭은 시신의 작은 구조도 꼼꼼하게 찾아서 확인하기 때문이다. 시신이 몇 달 동안 썩으면 안 되므로, 해부학 실습실에 들어올 때 방부 처리를 한다. 방부 처리를 전문 용어로 ‘고정’(fixation)이라고 부른다. 살아 있을 때 모습으로 고정한다는 뜻이다. 시신에 주입하는 방부제를 고정액이라고 부른다. 고정액의 주된 성분은 포르말린이다. 포르말린은 살아 있는 사람한테 해롭기 때문에, 아주 묽게 만들어서 쓴다. 수백년 동안 이 고정액을 써 왔고 별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고정한 시신을 오래 만지는 해부학 선생(교수와 조교를 일컫는 말)부터 일찍 죽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 어른끼리 만나면 서로 젊어 보인다고 말한다. 진짜 젊어 보여서 말할 때도 있고, 듣기 좋으라고 말할 때도 있다. 누가 나한테 젊어 보인다고 말하면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늘 고정액에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고정액 덕분에 내 몸이 썩지 않으며, 따라서 젊음을 오래 간직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웃으면 마지막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해부학 선생은 죽은 다음에도 썩지 않아서 반드시 화장해야 됩니다.” 시신을 고정하는 방법은 학교마다 다른데, 내가 속한 학교에서는 다음 방법을 쓴다. 먼저 넓적다리 앞에 있는 넙다리동맥을 드러낸다. 넙다리동맥은 살아 있을 때 맥박을 만질 수 있으며, 이것은 피부에서 가깝다는 뜻이다. 따라서 많이 해부하지 않아도 넙다리동맥을 드러낼 수 있다. 드러낸 넙다리동맥에 주삿바늘을 꽂은 다음에 고정액을 주입한다. 동맥과 정맥은 온몸에 퍼져 있으며, 모두 심장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넙다리동맥으로 주입한 고정액은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진다. 이때 넙다리정맥을 열어서 동맥과 정맥에 있던 혈액을 뺀다. 그 결과로 혈액이 있던 자리를 고정액이 차지하게 된다. 고정액이 온몸에 퍼지지 않을 때에는 시신의 일부가 썩는다. 해부학 실습실의 시신은 모두 기증받은 것이며, 이 소중한 시신을 제대로 해부하지 못하면 참 안타깝다. 잘 고정된 줄 알고 학생한테 해부를 시켰는데, 나중에 일부가 썩은 것을 발견할 때도 있다. 학생은 시신을 바꿔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시신을 바꾸면 피부부터 다시 해부해야 되므로, 그 조의 학생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낸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바꾸자’는 의견도 내고, ‘대충 해부하고 다른 조 시신을 잘 살피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처럼 고정액이 온몸에 퍼지지 않는 첫째 까닭은 시신의 혈관 상태가 나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는 동맥경화다.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고 게으르게 운동하면 동맥경화가 생긴다. 동맥경화가 심해지면 동맥이 막히고, 마침내 터져서 출혈을 일으킨다. 이처럼 혈관 상태가 나쁘면, 살아 있을 때 혈액이 온몸에 퍼지지 않아서 문제이고, 돌아가신 다음에는 고정액이 온몸에 퍼지지 않아서 문제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기름진 음식을 조금 먹고 부지런히 운동해야 될 것이다. 둘째 까닭은 잘 고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병원에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를 비롯한 의료 기사가 있듯이, 의과대학에는 해부학 기사가 있다. 시신 고정을 맡은 해부학 기사는 관련된 기술을 갖추려고 언제나 애쓰며, 시신이 들어올 때마다 긴장하고 정성껏 고정한다. 하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도 있다. 해부의 시작은 고정이며, 고정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과거 포르말린을 고정액으로 쓰기 전에는 알코올을 고정액으로 썼다. 초등학교 때 여름방학 숙제로 벌레를 채집한 다음에 알코올을 주입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알코올 중에서 에틸알코올(술)을 즐겨 마시는 해부학 선생이 꽤 많다. 그들은 술집에 모이면 ‘건배’ 대신에 ‘고정’이라고 외친다. 해부의 시작은 ‘고정’이고, 해부학 선생인 자신부터 ‘고정’해야 된다는 논리이다. 살신성인의 정신일까? 아니다, 술 마시고 싶어서 지껄이는, 말도 안 되는 핑계다. 해부학 선생은 포르말린 때문이 아니라 에틸알코올 때문에 일찍 죽기 쉽다. 해부의 시작은 고정이며, 고정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한겨레 2013.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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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 작성자이지윤
- 작성일201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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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지윤
- 작성일201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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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새정부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낙마와 자진사퇴를 보면서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성 대통령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깨끗하고 참신한 이미지가 유권자들에게 크게 어필했고, 이게 당선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보여진다. 남성 중심의 마키아벨리적인 권모술수와 음모의 정치가 사라지고 법과 원칙에 충실한 부패 없는 정치가 자리 잡아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국민은 기대하는 것이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여성 대통령의 출현은 역대 어떤 남성 대통령도 이룩하지 못했던 부패 없는 정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부패는 흔히 공직자가 직위를 이용하여 금품을 받는 것 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부패근절은 이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부패의 범위는 단지 공공부문에서 일어나는 정치인이나 관료의 부패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사람들이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성실히 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학위논문 대필시키기, 재벌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대기업의 중소기업 납품가 후려치기 및 기술 도용하기, 직장인들의 근무시간 주식투자, 식품업자의 불량제품 제조 및 판매, 예체능계의 입시부정, 시험 부정행위 등의 현상들도 넓은 의미에서 부패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사람은 누구나 가장 잘할 수 있는 한 가지 일, 즉 기능을 갖고 태어난다고 하였으며, 사람들이 각 자 맡은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때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된다고 설파하였다. 플라톤의 사상을 빌려 우리 정치를 분석하면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은 뇌물을 받지 않고 공직을 공정하게 이행하고, 일반 국민들은 자기 재능과 능력에 가장 알맞은 일을 성실히 할 때 우리나라가 정치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플라톤이 꿈꿨던 이상사회인 정의로운 사회가 구현될 수 있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의 중심국가군에 포함되려면 넓은 의미의 부패없는 국가는 필수다. 물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사회에 어느 정도의 부패는 허용되어야 하며 부패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공직자의 부패는 뇌물을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국민 개개인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하지 않는 넓은 의미의 부패로 확산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큰 부패는 작은 부패를 낳으며, 작은 부패가 사회전체에 퍼져 국민들은 부패를 부패로 여기지 않고 부패에 무감각하게 되며 부패가 일상화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여성이 남성보다 인맥, 학연, 지연에 약하다. 이 말은 여성은 남성보다 인맥, 학연, 지연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여성 대통령은 여성의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들어 남성이 지배했던 한국정치에 만연한 부패를 척결하여야 한다. 그러면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무감각하게 퍼져있는 넓은 의미의 부패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사회전반에 걸쳐 관습과 관례로 여기며 별다른 저항감 없이 널리 퍼져 있는 부패를 허용하는 문화를 바꿔나가야 할 때이다. 대통령 주변과 사회지도층이 부패하지 않으면 국민들도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게 된다. 지도층이 법과 원칙을 지키면 국민들도 법과 원칙을 지키며 땀 흘려 열심히 일한다. 각자 노력한 만큼의 결실이 돌아온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국정목표로 선언하였다. 그러나 국정목표의 달성은 사회 전반에 걸친 부패가 없어질 때만 가능하다. 살기 좋은 세상에는 부패가 없다.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은 강한 의지를 갖고 여성이기에 더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부패척결을 국정의 기본으로 삼아 국정목표를 추구하길 바란다. [한국일보 2013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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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 작성자이지윤
- 작성일2013-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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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 작성자배안나
- 작성일201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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