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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삼성의 직무적성검사에 역사 문제가 출제된 것이 기사거리가 되었다.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 또한 입사시험에서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학벌이나 영어 점수, 자격증과 같은 스펙만으로는 사회성이나 충성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으니 사람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는 인간성 테스트를 하겠다는 것이다. 합숙 면접을 통해 지원자의 인성능력을 평가하는 것과 같은 발상이다. 이때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 특성, 성품은 취업을 결정하는 고차원적인 능력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EQ(Emotional Quotient 감성지수)’가 있다. 1990년대에 등장한 ‘감성지수’는 기존의 ‘IQ(Intelligence Quotient 지성지수)’를 대체하는 새로운 평가도구로서 직장과 가정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EQ’를 측정하는 각종 평가 도구가 개발되고 감성을 계발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학습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감성은 취업이나 승진 심지어 결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자본이다. 에바 일루즈는 이처럼 공감 혹은 소통이 능력으로 치부되는 사회를 ‘감정자본주의’라고 정의한 바 있다. 감정은 이익을 창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고 소통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능력이자 모종의 문화 레퍼터리가 된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데도 유익하다. 공감, 소통, 융합, 통섭 등 피차간에 경계를 허물고 함께 하자는 단어가 유행한 지 오래됐고 수많은 ○○ 인문학이 생겨났지만, 사회는 불통의 극한을 달리고 개인은 여전히 고립되고 무시되며 붕괴된다. 소통과 공감을 표방하는 시대에 왜 이런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일까. 스테판 메스트로비치는 이를 ‘탈감정사회’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는 현대인들이 문화산업에 의해 합성된 광대한 범위의 유사 감정을 느끼지만, 사실 그것은 단조롭고 기계적이며 대량생산된 감정이 친절함이나 동정심이라는 윤리로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고 감정적으로 사이좋게 지내지만 사실상 무감동하다. 사건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 반응은 여론형성자들에 의해 이미 마련되어 있다. 사건이 전개되고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는 이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알려주고 무엇을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탈감정사회에서 사람들은 사건에 대한 자발적 감정을 느끼고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된 여론을 숙지하고 예상되는 감정을 습득한다. 습득된 감정은 사회적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공유되는 감정을 모르면 그는 점심식사의 대화에서 소외되고, 적절하게 흥분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면 공공의 적으로 몰리기 쉽다.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형성되어 있는 감정의 상태를 습득하고 체화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불통 또한 이와 관련이 있다. SNS가 활성화되면서 우리는 수시로 감정을 표현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온라인망에서 크고 작은 사회적 사건에 대해 호불호를 표시할 수 있고, 댓글을 달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오프라인에서의 회합을 주도할 수도 있다. 가능한 감정의 양태들은 이미 주어져 있고, 우리는 그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서 ‘좋아요’에 한 표를 누름으로써 우리는 의사 표시를 다한 것일까.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 ‘좋아요’라는 한 마디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하루에도 몇 차례씩 표시되는 우리의 감정은 현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소통이 능력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진정한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자발적인 감정 표현이 사라지면서 행위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잃어버린 즉각적이고 자발적인 감정을 되찾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감정에 적절한 행위를 취하는 것이다. 문혜원 아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중부일보 201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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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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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제도는 대표적인 모성보호 정책으로 여성의 경력단절을 방지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정부는 지난 2001년 육아휴직급여를 도입한 이후 제도 활성화를 위해 급여를 확대하는 등 지속적으로 지원을 확대해 왔다. 그 결과 육아휴직 이용률(고용보험 가입자 중 여성 육아 휴직자수를 출산전후 휴가자수로 나눠 산정)은 2002년의 16%에서 2013년의 74%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지난 주 정부는 이에 더하여 대체인력 채용과 휴직자의 복귀를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강화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다 좋은 얘기다. 그러나 이제는 육아휴직제도를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구조 속에서 봐야할 때다. 모든 근로자는 1년간 육아휴직의 권리를 가지나, 원칙적으로 무급 휴직이다. 고용보험 가입자에 한해서만 휴직 중 급여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출산한 여성 중 육아휴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 여성은 한정돼 있다. 지난 해 출생아 수는 43만 6천명이고, 고용보험에서 육아휴직급여를 받은 여성은 6만 7천명으로 전체 출산 여성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4월 기준으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9.0%이고, 취업자 중 임금근로자 비율은 74.4%며, 임금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59.1%다. 다시 말하면, 여성 8명 중 4명이 취업자고, 그 중 3명이 임금근로자며, 그 중 2명이 고용보험 가입자인 셈이다. 결국 육아휴직 활용도는 고용보험 범위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고용보험 가입률은 고용형태에 따라 큰 차이를 나타낸다. 지난해 4월 여성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73.8%인데 반해, 여성 비정규직 근로자의 경우 41.3%에 불과하다. 이렇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구조는 모성보호제도에도 확인된다. 지역적으로도 큰 격차가 관찰된다. 같은 시점 경기도의 전체 임금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율 69.3%로 울산, 충남, 경남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나, 도 내에서는 가입률이 가장 높은 화성시(79.6%)부터 가장 낮은 양평군(58.2%)까지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모성보호제도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고용보험 적용 사업장의 확대를 위한 정책 개입의 여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업장 사이에서도 육아휴직 활용도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 2012년도 고용보험통계에 의하면, 상시근로자수가 1천명 이상 사업장의 육아휴직 이용률은 88%인데 반해 고용 규모가 99명 이하인 사업장의 경우 56%에 불과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보수, 근로시간, 대체인력 확보 가능성 등 여러 측면에서 근로여건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한 차이의 대부분은 중소기업에게 지원금을 조금 더 준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제력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규모가 1천명 이상인 사업장의 종사자는 고용보험 피보험자의 17.9%를 차지하는 반면, 규모가 99명 이하인 사업장의 경우 58.4%를 구성한다. 이제 여성고용정책 대상의 무게중심을 중소기업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정부가 고용 확대를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선정하여 모든 부처에 걸쳐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노력을 전적으로 환영한다. 그와 더불어 중점 과제로 제시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유도를 위한 일련의 정책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정부가 여성 고용 확대를 진지하게 추구한다면, 우리 노동시장의 근본 문제인 정규직-비정규직의 이중구조와 대기업-중소기업의 경제력 불균형 구조를 피해갈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경기일보 2014.10.22] 김정호 아주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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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정우준
- 작성일201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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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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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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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볼리비아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가 사실상 승리했다고 알려졌다.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그는 1차 투표에서 60%를 득표했다. 차점자인 시멘트업계의 거물 사무엘 도리아 메디나가 25% 득표에 불과했다니 이는 결선 투표가 필요 없는 압도적인 승리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12월 ‘사회주의운동당’(MAS) 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뒤 세 번째 승리를 거둔 모랄레스는 천연가스 덕분에 호황을 누리는 경제 부문에서 정부의 역할을 확대하고 빈곤을 줄이면서 ‘원주민 사회주의’를 강화하겠다고 공언했다. 볼리비아는 과테말라, 페루와 더불어 원주민의 비율이 높은(전체 인구의 30%를 넘는) 라틴아메리카 국가이며 모랄레스는 잘 알려진 대로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다.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마야, 페루의 케추아, 볼리비아의 아이마라 같은 원주민 집단은 1992년 ‘원주민 권리 침탈’ 500주년을 앞두고 활동 폭을 넓히면서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맞서 차별 철폐, 관습법과 공동재산권의 인정, 이중언어 교육 실시, 정치적·사법적 자치권을 요구했다. 특히 볼리비아에서는 1990년 원주민 수백명이 공유지의 삼림 남벌에 항의하고 공동 토지소유권을 주장하고자 아마존의 열대우림에서 눈 덮인 안데스 산지를 거쳐 수도 라파스에 이르기까지 ‘존엄성과 토지를 위한 행진’을 펼쳤다. 이 역사적인 행진과 뒤이은 대중 참여 운동은 1995년 볼리비아가 다(多)종족 국가임을 선언하는 헌법 개정을 이끌어냈고 곧 지역 자치를 인정하는 대중참여법과 농업개혁법 등이 제정되었다. 따라서 모랄레스의 승리는 원주민 운동을 비롯해 미국 주도의 코카잎 박멸에 저항하는 코카 재배농 운동, 미국과의 자유무역 제안에 반대하는 노동운동 등 앞서 축적된 다양한 정치·사회 운동의 결실이었다. 모랄레스는 2006년 5월 천연가스 산업에 대해 정부의 통제를 강화한 뒤 통신회사, 발전소, 송전업체 등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면서 ‘자원민족주의’ 선봉에 섰다. 최근에는 자본과 기술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리튬 개발의 초창기부터 정부 주도의 산업화 방침을 천명했다. 모랄레스의 집권 이래 전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도 볼리비아의 경제성장률은 연 5%로 라틴아메리카의 평균 수치를 웃돌았고 1인당 국내총생산은 두 배 이상 늘었다. 더욱이 ‘유엔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경제위원회’(ECLAC)에 따르면, 볼리비아는 부유층과 빈곤층 간의 소득격차가 줄어든, 즉 경제 성장과 동시에 평등의 확대가 이루어진 드문 사례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2008년 동남부 ‘부유한 주’들의 반정부 시위와 자치권 확대 요구, 언론과 사법부 통제에 대한 반대파의 비난, 광산 개발과 밀림 지대 고속도로 건설 추진에 대한 환경단체와 원주민 동료들의 반감, 천연자원의 비중이 너무 높은 경제 구조, 농촌의 절대 빈곤 등 만만찮은 과제가 놓여 있지만, 여태껏 모랄레스 정부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서 해방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식의 좌파적 수사와 보수적 경제 운용, 사회복지 지출을 요령 있게 결합했다. 지방도시의 한 운전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고니(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가 대통령일 때(1993~1997, 2002~2003), 우리는 에스파냐어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그가 볼리비아를 발전시키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도둑질과 일신의 영달에 급급했을 뿐이다. 정규교육을 얼마 받지 못한 아이마라 원주민 코카 재배농이 볼리비아 최고의 대통령이 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나?” 모랄레스는 열대 지역인 엘차파레의 코카 재배농 조합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것은 명예직일 뿐이지만, 앞으로 5년 동안 그가 언급한 대로 “자신과 농민들의 명예를 위해 함께 투쟁하고 울며 성공”했으면, 그리하여 기적 같은 도전, 감동적인 실화, 인상에 남는 인생 반전의 가능성이 사라져가는 이곳에도 가슴 뭉클한 사연을 전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구병 아주대 사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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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 작성자이솔
- 작성일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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